3. 내가 해야 하는 것일까?
2015년 여름, 한국어 선생님으로서 강단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내·외 한국어 교육 기관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서 활동하며, 이건 정말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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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공부할 때 학원이나 과외, 인터넷 강의를 통해 공부하기보다는 혼자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독학파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할 때마다 혼자서 공부하는 학습자도 충분히 언어의 네 가지 기술(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을 익힐 수 있게 하는 교재를 찾아 헤맸고, 언젠가는 그런 한국어 교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있다.
석사 2학기 때 ‘한국어 교재 연구 및 교수법’ 강의가 개설되었고, 이건 꼭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수강 신청을 하였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교재를 분석하고, 기존의 교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더 나은 교재를 제안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출 수 있게 도와준 유용한 강의였다.
기말 과제로 ‘고급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통합 교재 분석’을 주제로 조별 발표를 했다.
발표가 끝나고, 교수님께서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교수님 말씀이 맞았다.
사실 그 교수님은 한국어 교원 양성과정을 이수할 때, 모의 실습을 지도해주셨던 교수님이었다.
수많은 예비 교원들을 지도해오신 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따로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이렇게 알아봐 주시니 감사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긴가민가했는데, 발표하는 거 보니 알겠네요. 양성과정 들은 적 있죠?”
학기가 끝나고 교내 한국어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2015년 여름학기 정규과정에 임시 강사로서 일해 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석사 과정생이 이런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마침 한국어 교원 양성과정을 이수하였고, 3급 자격증도 갖고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한국어 학습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던 때였다.
그렇게 2015년 여름학기부터 2017년 봄학기까지, 2년 동안 교내 한국어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었다.
공부를 하며 일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원에서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쌓고, 한국어센터에서는 현장에서의 경험을 쌓아가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최대한 즐기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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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을 졸업하면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애초에 한국어 선생님의 꿈을 키우게 된 것이 해외에서였기도 하고,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접하는 것을 즐기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비교적 한국어 교육의 기회가 부족한 학습자들을 직접 만나서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한국어 교육 연구 방법론’을 강의해주셨던 교수님으로부터 ‘국립국제교육원’의 ‘해외 교원 파견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국립국제교육원의 해외 파견 프로그램은 개발도상국에서의 한국어 교육의 양적·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한국어 교원의 글로벌 교육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어 교육의 위상을 높이고, 개인적으로는 한국어 선생님으로서 성장하는 것을 추구하는 나와 취지가 똑 들어맞는 프로그램이었다.
석사 학위 논문 최종 발표와 졸업이 확정될 무렵 2017 해외 교원 파견 프로그램 공고가 떴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동안 준비해왔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활동 계획서, 교수 학습 지도안을 꺼내 지원하였고, 최종 선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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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센터에서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해외 교원 파견 프로그램 국내 사전 연수 전까지 3개월 동안의 공백기가 생겼다.
스무 살 이후로는 한 번도 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걸 핑계로 조금 쉬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마침 집 근처의 초등학교에서 3개월 동안 탈북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고 있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최대한 많은, 다양한 배경의 학습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기 때문에, 깔끔하게 쉴 생각을 거두었다.
아동·청소년 탈북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육은 성인 외국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육과는 상당히 달랐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국어, 수학, 사회 등의 기초 교과 과목 학습 또한 도와줘야 했다.
이것이 바로 책에서만 보던, 강의에서만 듣던 내용 중심 교수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기초 교과 과목 정도야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20년 만에 마주한 초등학교 교과서는 상당히 어려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어 선생님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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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파견 지역인 카자흐스탄으로 향했다.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도 참 낯선 나라인데, 파견 학교는 더욱 알려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카자흐스탄 서남부의 도시 크질오르다에 위치한 크질오르다 국립대학교였다.
개발도상국에 파견된 교원으로서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워낙 기반 시설이 부족한 지역인지라 생활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가르치는 것은 즐거웠다.
학생들의 한국어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고, 교직원을 비롯해 도시의 모든 사람이 참 친절했다.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학술대회, 올림피아드, 교사 연수, 문화 행사 등 각종 대외 행사에도 참여하며, 해외 한국어 교육 현장의 실태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어 교육을 공부하며 배워온 이론적 지식, 국내 한국어 교육 기관에서 일하며 겪은 현장 경험을 통해 쌓아온 한국어 교육의 원리와 신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기도 하였다.
특히 교수 언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였다.
한국어는 한국어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한국어 교육의 정설에 가까운데, 현실적으로 그런 여건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어떤 교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해 고민 중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어 교육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학습자가 누구인지, 어떤 환경에서 학습이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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