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 지음, 1936년 출판,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출판, 2010년 12월 30일 세계문학판 발행
소설과 영화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방대한 양에 지레 겁을 먹고 차마 읽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도 안 오고 한번 읽어나 볼까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하였고, 곧 이 작품의 매력에 사로잡혀 버렸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동안 못 만났던 가족, 친구,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 책의 이야기를 하도 해대서, 심지어 동생은 그만 좀 얘기하라고 할 정도로 한동안 이 작품 속에 푹 빠져 벗어나지 못하였다.
정말 엄청난 작품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이고 모든 주인공과 배경이 살아 숨 쉰다.
천명관의 '고래'를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흥분이 배가 되어 요동쳤다.
방대한 양에 비해, 이야기의 큰 주제나 흐름은 간단하다.
배경은 미국의 남부이다. 미국의 남부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남북 전쟁과 그 전후 상황을 그린다.
전통과 반전통, 이상과 현실의 대립과 갈등을, 이상적인 고상한 남부 여성을 꿈꾸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스칼렛 오하라의 '생존' 이야기로 풀어낸다.
스칼렛 오하라는 정말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그녀 자체도 프랑스 귀족 출신인 어머니와 아일랜드 농민 출신 아버지의 피가 섞여 전통과 반전통, 이상과 현실의 대립을 나타내는 데 적절하다.
전쟁을 그려낸 소설들은 보통 고뇌에 찬 주인공을 통해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사상'과 '신념'을 피력하는 데 집중하지만, 스칼렛 오하라에게는 '사상'과 '신념' 따위는 없다.
그저 굶지 않고 사는 것, '생존'만이 그녀의 유일한 사상이자 신념이다.
그러다 보니 이상과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도 하는데,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녀의 영혼의 짝인 레트 버틀러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다. 거칠고 마초적이고 남성적이다.
이상을 대변하는 '애슐리'와 현실을 대변하는 '버틀러'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스칼렛 오하라의 연애 감정 또한 이상과 현실의 대립이라는 작품의 큰 주제를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그 감정의 변화와 이를 그려낸 묘사가 흥미로워, 연애 소설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해낸다.
비비안 리가 스칼렛 오하라로 열연한 동명의 유명한 영화를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영화에서는 이런 부분이 더 극적으로 묘사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남북 전쟁에 대해 철저히 남부인의 시각을 고집한 작품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비판을 받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 남부인은 이상을 추구하든, 현실을 추구하든 어쨌든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고, 북부인들(작품 속에서는 '양키'라고 표현한다.)은 매너도 지킬 줄 모르고, 남부인들을 괴롭히는 악한 존재들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처럼 지극히 철저한 남부인의 시각을 고집한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주게 되었다.
남북 전쟁에서 결국은 남부가 패했고, 노예제도는 사라졌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중심으로 서술되고 또 후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대의 우리는 '북부'의 관점에서 남북 전쟁에 대해 배우게 되기 마련이다.
평범한 공교육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평범하게 세계사를 배운 나 또한 남북 전쟁은 불합리한 노예 제도를 고집하며 노예를 혹사시킨 남부인들이,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깨어있는 북부인들과의 전쟁에서 패했고, 그 결과 지금의 평등 사회가 이루어졌다고 알아왔다.
단 한 번도 남부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만약 이 작품을 어릴 때 접했다면, 균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을까, 지금 같은 충격을 느낄 수 있었을까.
교육은 참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지만, 문학을 포함한 예술 또한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남부인의 시각을 그린 이 작품을 알게 되어, 그나마 편견 없는, 균형적인 입장을 조금이나마 갖게 된 것 같아 다행이다.
마거릿 미첼의 대표작이자 유일한 작품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녀에게 큰 영광과 성공을 안겨다 주었다.
소설은 1937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고, 영화 또한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동시에 엄청난 비판도 들어야 했다. 비판은 보통 '사상', '신념', '깊이', '예술성'이 없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건, 바로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야기'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주인공과 사건을, 길고 웅대한 이야기를 생동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다.
작가는 '재난을 만나도 쉽게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 있고 강하고 용감한데도 굴복하고 마는 사람이 있다'라고 말하며, 그들의 차이를 만드는 '불굴의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렇다. 중요한 건 결국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사느냐에 대해 논하기 전에, 일단 살아야 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한 마디이자, 스칼렛 오하라의 마지막 한 마디처럼, "어쨌든 내일도 또 다른 하루가 아닌가."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단, 시간이 많은 경우에 읽기 시작하길 추천한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