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을 세계로, 쌈을 문화로
1.
몇 년 전, 마포의 한 영어학원에서 강사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원어민 선생님들과 파트너로 짝을 지어서 수업을 하는 방식이었기에 미국에서 온 친구들과 가까이 교류하며 친하게 지내곤 했다.
대부분 또래들이어서 항상 같이 붙어 다니며 친하게 지냈지만, 한국에서 쭉 자라온 나에게 '아 우린 참 다른 환경에서 자랐구나' 느끼게 된 부분은 대게 점심시간이었다.
주변에는 국밥집이나 백반집이 대부분이어서 원어민 선생님들은 보통 집에서 점심을 싸와서 먹곤 했다.
점심시간, 컴퓨터실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국적인 향기 때문에 Tera의 점심 먹는 모습을 자주 관찰하곤 했는데,
그 모습이 나에게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문화 차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항상 느꼈던 것이 생각난다.
테라는 주변에 점심 먹을 곳이 없다며, 항상 집에서 정체모를 랩을 싸오곤 했는데, 랩 안에 내용물도 참 다양했다. 고기는 물론 야채, 콩, 치즈 그리고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테라는 항상 한 손으로 랩을 한입 움큼 베어 물었고, 들려 있는 손에는 내용물도 넘치고 국물도 흥건히 넘쳤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떨어지는 내용물을 잡는 받침대 역할을 했는데, 그렇게 먹는 도중 떨어진 내용물을 다시 입에 넣곤 했다.
여기서 테라를 보며 우린 참 다른 환경에서 살았구나를 느끼게 한 부분은,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다!
숟가락 젓가락을 필수적으로 사용하고, 사용하는 방법 또한 정해져 있는 문화에서만 자란 나에게 손에 음식을 묻혀가면서 먹는 방법은 항상 새로웠다.
손을 이용한다면 치킨과 피자이려나.
테라랑은 일 끝나고 술 한잔 같이 하는 동료였는데, 테라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단연 삼겹살이었다.
"This is genius!" 리액션 좋은 테라는 삼겹살 한 점 한 점 먹을 때마다 감동을 받곤 했다.
"테라, 더 맛있게 먹는 방법 알려줄게, 한국인들은 삽결살을 그냥 먹지 않아"
한국식 고깃집을 처음 오는 외국인들은 고기와 함께 나오는 채소의 정체를 잘 알지 못한다.
대부분 채소를 식전 빵처럼 뜯어먹든지, 심지어 채소를 불판에 구워 먹는 친구들도 참 많이 봐왔다.
테라에게 고기와 항상 같이 나오는 채소의 정체를 알려준 뒤, 그녀는 쌈에 늪으로 빠져버렸다.
원어민 선생님들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지 항상 원장님께서 큰 마음먹고 하는 회식에서 도망가기 일 수였는데 삼겹살집에 간다고 하면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서 또 배워왔는지 상추 위에 깻잎 레이어 스킬까지 선보인다.
포크 나이프 달라는 다른 선생님들을 훈계하면서 삼겹살은 손으로 먹는 거라며 쌈 위에 뜨거운 삼겹살을 집어서 올려 먹는 테라.
잠깐만. 거기까진 안 알려줬는데..?
2.
호주에서 우연히 요식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외곽에 작은 이자카야였다.
정말 최소의 최소 자본으로 시작한 우리에게 손이 많이 가고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한 한식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비교적 재료 공급이 쉽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이자카야로 시작하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일화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화들은, 손님들이 끊임없이 재료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본 음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 계란은 프리 레인지인가요?"
"유기농 야채를 쓰나요?"
그중 가장 많은 문의는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특정 재료가 들어 가는가였다.
알레르기가 있어서 특정 재료를 빼서 주문했던 손님들이 하루에 적어도 두세 번은 있었다.
프리 레인지가 뭔지도 잘 몰랐던 나는 '닭을 가둬 키우냐 풀어 키우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다르다고?' 갸우뚱하며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3.
한식은 세계인이 주목하는 음식이 되었고 한류 열풍과 함께 한식의 인기도 상승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한식은 점점 위상이 높아지고 있고 정부에서도 우리의 음식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축제를 개최한다.
불고기, 김치, 치맥, 삼겹살, 비빔밥 등은 이제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는 사람은 절대 없을 한국음식.
그런데 불고기, 김치, 비빔밥도 시도하기 꺼려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왜 한식을,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 꺼려할까?
해외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또 가까운 친구들을 보며, 나만의 해답을 찾았다.
0. 익숙하지 않다.
1. 한국 음식이 뭔데? 정보가 부족하다. 익숙하지 않다.
2. 먹는 방법을 모른다. 익숙하지 않다.
3. 어떤 맛이 날지 두렵다. 익숙하지 않다.
4. 재료 설명이 자세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서양권 사람들은 다양한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식자재를 구매할 때에도 꼼꼼하게 체크하는 그들에게 새로운 음식에 도전한다는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식자재를 사용해야 하고, 식자재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식자재를 오픈해야 한다.
그럼 그들에게 단지 '불고기가 맛있다', '김치가 건강에 좋다', '한국 드라마에 항상 나오는 치맥'이라 일방적인 광고식의 강요된 접근보다는
알레르기와 문화 등을 배려해서 식자재를 알려주는 쌍방향적이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한식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해외인들에게 한식을 알리는 첫 번째 단계는 '시음하고, 시도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음식을 쉽게 접근을 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맛있고 건강하고 주관적으로, 아니 객관적으로도 최고인 한국음식이 주류가 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할까?
그렇게 한국음식을 세계로 알리고 싶다는 포부가 생기면서, 문득 테라가 떠올랐다.
항상 손으로 Wrap을 먹던 모습,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도 항상 맛있는, 그들에게도 이미 너무나 익숙한.
쌈!
브리또, 타코, 월남쌈. 이미 서양에서 성공적으로 음식 문화로 자리 잡은 곳에는 쌈이 있었다.
우리는 마늘의 민족, 배달의 민족 아니 그전에 쌈의 민족이 아니던가!
Wrap(랩)과 SSAM(쌈)은 다르다.
브리또나 월남쌈을 보면 '싸 먹다' 보다 '돌돌 말아서 먹다' 쪽이 더 가까워 보인다.
쌈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이며 단어이다.
국토 70% 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 계절에 맞는 채소를 언제든지 수급할 수 있었고, 농경사회로 협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서로 나누어먹는 문화를 가진 우리의 문화 소중한 문화, 쌈은 천년 넘게 선조의 지혜로 이어져온 우리의 음식이며 우리가 함께하는 먹을거리이다.
쌈을 랩으로 소개하지 않고, 쌈 자체로 홍보가 되어야 한다.
쌈은 쌈으로 불려져야 한다.
쌈이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쌈의 의미와 정확한 발음 나아가 다양하고 활발한 홍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쌈 자체가 문화가 된다. MAKE IT SSAM
쌈은 특정한 국가나 음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베지테리언을 비롯한 비건, 종교적 이유로 고기를 먹지 못하는 문화의 사람들, 다양한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 모두 쌈을 즐길 수 있다.
삼겹살이 아니어도 호박잎 한 장에 쌀밥을 올려 강된장 한 점 싸도 얼마나 맛있는가!
음식은 문화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빠르게 일식 세계화에 힘써왔고, 그렇게 일본음식은 전 세계인들에게 익숙한 음식이 되었으며, 그뿐 아니라 일본음식은 고급스럽다는 타이틀까지 따게 된다.
한국음식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익숙한 음식으로 '쌈' 문화를 접하게 된다면 추후 자연스럽게 한국음식 문화로 이어질 것이다.
내 마음대로 골라 넣고, 내 손을 이용해 재미있으며, 건강을 생각하는 그들에게 쌈문화는 한국음식에 관심을 갖고 한국음식점이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