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INTEACHER 찐선생/책 읽는 찐선생

한국단편문학선 1&2

ZZINTEACHER 2020. 1. 22. 16:50

 

한국단편문학선 1

김동인의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 현진건의 빈처, 운수 좋은 날 ; 이광수의 무명 ; 나도향의 물레방아 ; 최서해의 홍염 ; 김유정의 동백꽃, 만무방 ; 채만식의 맹 순사, 치숙 ; 이상의 날개  ; 이효석의 산, 모밀꽃 필 무렵 ; 이태준의 밤길, 토끼 이야기 ; 정비석의 성황당 ; 염상섭의 임종, 두 파산 수록

민음사 출판, 종이책 초판 1998년 8월 5일 발행, 전자책 2012년 9월 28일 발행

한국단편문학선 2

김동리의 황토기, 까치 소리 ; 황순원의 소나기, 비바리 ; 오영수의 갯마을 ; 손창섭의 혈서 ; 정한숙의 전황당인보기 ; 이호철의 나상 ; 장용학의 비인탄생 ; 서기원의 암사지도 ; 박경리의 불신시대 ;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 선우휘의 반역 수록

민음사 출판, 종이책 1999년 3월 1일 발행, 전자책 2012년 9월 29일 발행

 

 

내가 졸업한 외국어 고등학교는 입학 전에 총 4번의 배치 고사가 있었다. 

그 시험의 결과에 따라 전공 외국어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중국어, 일본어가 인기라 해당 학과에 가고 싶은 학생들은 배치 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했다. 

나는 독일어를 1지망으로, 러시아어를 2지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배치 고사가 크게 중요하진 않았다.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배치 고사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어 시험에는 '문학' 부분도 있었는데,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한국 단편 문학 몇 개를 엮은 책을 읽고 공부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한국 문학은 잘 안 읽었다. 

분명 모국어이고 모국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에 외국 문학 작품에 비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한국 문학은 무언가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도 한국 문학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외국 문학은 번역을 거치기 때문에 표현들이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조금 다듬어진 반면, 한국 문학은 작가가 쓴 그대로를, 모든 표현들을 온전히 한국어로 또 한국 문화로 읽어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보통 한국 단편 문학선에서 선보이는 책들은 한국어로 한국 문화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기는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을 쓴다던가, 한국 단편 문학이 담고 있는 당시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또, 보통 한국 단편 문학을 접하게 되는 것이 나처럼 시험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작품 자체를 즐기고 느끼려고 하기보다는 작품 속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치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수능 시험 후에는 한국 단편 문학을 찾아본 기억이 없다. 

 

그러다가 알쓸신잡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이상'의 작품들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상'의 전집을 사서 읽다 보니 다른 단편 문학 작품들도 읽고 싶어져서, 민음사의 '한국문학단편선'을 구매하였다. 

다른 장편의 책을 주로 읽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하나씩 읽어 나갔다. 

시험을 위해 읽은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옛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기도 하고, 혹은 옛날과는 다른 시각과 감상에 놀라기도 했다. 

처음 읽은 작품들도 많았는데, 이렇게 주옥같은 작품들을 지금 알게 된 것이 아쉬웠다가,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의 예는 채만식의 '치숙'이다. 

채만식의 치숙은 언어 영역을 공부하는 수험생이라면 모두가 읽어봤을 것이다. 

순수한 혹은 멍청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취해 되려 현실을 비판하고자 한 글인데, 다시 읽어 보니 참 다르다. 

고등학교 때 이 작품을 읽을 때는 주인공이 참 어리석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성인이 된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과 말이 주인공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전율의 소름이 아니라, 내가 어느새 이렇게 변해버린 건지에 대한 안타까움의 소름이었다. 

덕분에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에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인물상과 지금의 내가 비슷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며, 더 심해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나의 발목을 잡아준 '치숙'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두 번째 예는 선우휘의 '반역'이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번에 처음 읽어 보게 되었다. 

"그놈의 마음이란 것이 이상야릇한 것이어서 알 것 같으면서 모를 것이 남의 마음일 뿐 아니라, 때로는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가늠하기 힘든 것이고 보면 사람의 마음이란 언젠가도 풀 길 없는 가장 골치 아픈 인간의 영원한 수수께끼인지 모른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친구 김·J에 관한, 아니 그보다 그의 마음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이 보기에 ·J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마치 '예스맨'에 대항하는 '노맨'과도 같다. 

어렸을 때 ·J는 왜 그랬는지 그건 자신도 모르겠다면서도,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침묵할 때 소리를 낸다. 

자라면서 그는 인간에 있어서 최대의 강적은 자기 자신임을 깨닫고, 그 깨달음에 따라 행동한다.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시대에 순응하는 자신을 깨닫고, "나 자신이 어쩌면 이렇게 데데하게 되었는가 하는 자책이 정말 밀물처럼 가슴에 밀어닥치더군."이라고 생각하며 세상과 반비례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이 마지막 부분이 참 와닿았다. 

어떻게 보면 온라인 한국어 교육, 한국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우주보다 더 개척되지 않은 바다를 알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는데, 현실의 장벽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이런 것에도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부딪혀 나가는데, 지금은 괜찮지만, 언젠가는 힘에 부칠 때도 있을 것 같다. 

그때  다시 이 책을 읽으며 자신에 대한 반역을 꿈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은 책에 대한 소소한 감상을 써가며 늘 느끼는 거지만, 정말 고전은 고전이다. 

흔히 추천 도서라고 불리는 작품에 대해 은근한 반감이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덴 이유가 있다. 

처음 읽으면 새롭고, 재차 읽어도 새롭다. 그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 마치 알지 못하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같아, 고전 읽기를 즐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