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트(The Moment)
모멘트(The Moment)
더글라스 케네디(Douglas Kennedy) 지음, 2011년 출판
조동섭 옮김, 밝은세상 출판, 2011년 10월 15일 발행
모멘트는 빅 픽처와 더불어 더글라스 케네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흡입력으로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은 보통 성공과 이에 따른 유혹, 그 유혹에 넘어가서 저지르게 되는 실수들, 그로 인한 위기, 그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을 그려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의 작품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배경은 통일 전 독일, 둘로 나뉜 베를린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독일어를 공부하기도 했고,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서 독일에 가본 적도, 지난해 추억을 되살려 홀로 여행을 떠난 적도 있어서 독일에 대한 애정과 호감이 큰 편인데, 이 작품은 내가 보지 못한, 알지 못하는 통일 전 독일을 그린다.
처음 독일에 갔을 때 동서남북 다양한 곳을 방문했는데, 그중 단연 베를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2005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독일이 통일이 된 지 15년이 지났을 때였는데도, 베를린 곳곳에서 전쟁과 분단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들은 흔적이라기보다는 기념물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이자 지금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의 사람이 느낄 만한 감정들을 모두 느꼈던 것 같다.
도심 한가운데 유대인 학살을 영원히 기억하고 사죄하기 위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만들어 놓은 독일의 전후 태도를 보며, 우리도 언젠간 정당한 사죄를 받기를 바랐고, 체크포인트 찰리나 베를린 장벽과 같이 분단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에서는 우리도 언젠간 통일이 되기를 바랐다.
독일은 그렇게 전쟁과 분단, 그리고 통일로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통일 전 독일을 그린다.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독일 문화나 역사를 공부해야 될 때도, 한 번도 그들의 분단의 역사나 실태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독일이 굉장히 어색하고 생소하게 느껴졌다.
더글라스 케네디답게 배경과 인물에 대한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독일과 달라서일까, 가상의 공간으로만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는, 알고 있는 독일은 깨끗하고 따뜻한 옅은 회색의 느낌인데, 작품 속 독일은, 특히 동독은 어둡고 쓸쓸한 짙은 회색의 느낌으로 그려진다.
아스팔트 위에서 자라나는 민들레 꽃처럼, 그런 무거운 어둠과 우울함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로맨틱하지만, 뻔한 이야기이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갔는데,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했다.
"'그런 낭만적인 일은 영화와 소설에서나 가능한 거야'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바람을 어리석다 여기게 될 때, 그때 우리의 청춘은 끝난다."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저만큼이나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역시 소설이라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옮긴이의 말을 읽고는 언제부터 사랑에 대해 이렇게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청춘을 끝내고 싶지는 않기에, 차선책으로나마 좀 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감성 세포들을 살려내야겠다.